최근에 발견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1

이 편지는 루이스가 마지막으로 입수한 편지 이후 우연히 발견된 것입니다. 내용으로 보아 당시와는 얼마의 시간차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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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웜우드에게

쯧쯧, 내가 그렇게 주의를 줬건만 맘을 놓고 있더니 이젠, 뭐라고? 환자가 원수를 의지하는 행동들이 습관이 되어 가는 것 같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쉽지 않은 싸움이다. 원수를 의지하는 행동들이 숩관이 된다면 강한 힘을 갖게 될텐데, 현재로선 아직 환자에게 남아있는 바람직한 습성들이나 그간 쌓인 신앙에 대한 교만을 이용해 보는 수밖에 없다.

제가 아무리 원수에게 가까워진다 해도 이제 기껏 털없는 원숭이 단계를 벗어난 것이니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습성이 많이 남아있을게다. 또한 환자가 원수에 대해서 점점 가까워지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간다면 환자도 어느 정도 그걸 느끼고 있을게다. 그렇다보면 슬슬 자신의 신앙이 꽤 자랐다고 느끼거나 이 정도면 잠시 쉬어도 괜찮다는 생각마저 들지. 이 두가지를 이용하는 거야.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해 주지.

환자가 열심히 교회에 봉사하다보면 사람들과 부딪히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저랑 안 맞는 사람이 있을게다. 환자의 영적 상태가 좋을 때는 그런 사람도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어느 정도 성공도 거두지. 그러나 본인이 영적으로 지칠 땐 그런 사람이 던지는 말 한마디가 가슴에 와서 꽂히게 되어있지.(물론 양쪽 다 지쳐있을 절묘한 타이밍을 잡아야 효과도 높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겠지?) 그 찰나에 환자의 머릿속에 '아니, 난 그저 잘해보려고, 순수한 의도로-이게 중요하다. 순수한 의도였다고 끝까지 밀어 붙여라-한 건데 저런 식으로 매도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을 집어넣어라. 이 다음에 이어지는 공식쯤은 너도 알고 있겠지. 이제는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상처나 전엔 다 포용해 줄 수 있었던 상대방의 단점같은 것을 그냥 던져주기만 하면 환자가 알아서 곱씹어가며 육즙을 만들어 낼거다.

원수라고 이 장면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거야. 즉시 원수가 환자에게 베풀었다고 하는 사랑이나 제자들에게 배신당한 제 모습따위를 보여주겠지. 환자도 이런식의 생각으로 돌이키는게 어느 정도 습관이 되어있지만, 지금은 약간의 교만이 쌓여있는바, 오히려 그렇게 때문에 잠시 그 단계를 미루려고 할게다. 어차피 자신은 원수에게 속해있고 곧 그에게로 돌이킬 것이니 지금 이 생각을 잠시 계속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인게지. 그때 넌 바로 '난 순수한 의도였는데..'를 계속 밀어붙이면서 분노의 쾌감을 즐기게 해야한다. (아무리 너라고 해도 분노의 쾌감을 설명해 달라는 말은 안 하겠지?) 물론 본인은 그게 분노의 쾌감이라고 못 느낄 것이고 혹시라도 '지금 내가 뭐하고 있나?'라고 생각하거든 '인간적으로 이 정도는 정당하다.'고 밀어 붙여야지.

물론 처음에는 환자의 생각처럼 '잠시'후에 원수에게로 돌이키겠지만 사건이 반복될수록 시간이 길어지고 결국 이것도 습관이 되는거다. 그땐 네가 애써서 순수한 의도였다고 밀어 붙이지 않아도 단지 자신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분노할거야.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는지 알겠지? 환자는 '난 순수한 의도였는데..'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호소가 해롭기 그지없는 바울이란 녀석이 말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지네들 구원공식과 정면으로 부딪힌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게다. 자신의 의도가 순수했건 악랄했건 간에 어째든 자신이 살아있으면 구원은 멀어진다는 것 말이지. 지금처럼, 구원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자신이 죽는 것이라는 명제를 성경속에다 묻어두고 그저 예수님처럼 봉사하며, 희생하며, 남을 돕고 사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할 때가 아직 너에게 남은 기회이다.

웜우드, 네 놈 하나 키우려고 내가 이런 것 까지 써야 하는 게냐.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는구나. 나를 생각해서라도 다음번엔 좀 더 희망적인 얘기를 써 보내길 바란다.

너를 아끼는 삼촌,

Screwt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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